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한 크루이프 (문단 편집) === [[토탈 풋볼]] === ||<-2>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요한 크라위프 네덜란드 14.jpg|width=100%]]}}} || 크루이프와 그의 스승 [[리누스 미헬스]]는 오늘날 [[토탈 풋볼]]이라 불리는 개념을 유행시킨 인물이다. 미헬스가 개념을 정리했다면 크루이프는 이를 실제 경기장에 구현해내며 찬사를 받았다.[* 그리고 감독이 된 이후엔 스승의 토탈 풋볼 이론을 더 발전시켜 이른바 크루이프이즘을 만들어낸다.] 헌데 사실 [[토탈 풋볼]]이라는 풍조를 요한 크루이프나 미헬스 감독 둘이서만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. 아약스 시절 이전에도 토탈 풋볼의 흔적을 볼 수 있는 흐름은 있었다. [[1950년대]] 4년간 A매치 32연승이라라는 불멸의 기록을 세운 무적의 [[매직 마자르]] [[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|헝가리]]는 경기 중에 유기적인 포지션 변경으로 황금색 바람을 일으켰고, [[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|우크라이나]]의 빅토르 마슬로프는 압박과 [[4-4-2]]를 이용해 토탈 풋볼로 이어지는 여러 개념들을 앞서 선보였으며, 독일의 공격적인 수비수 [[프란츠 베켄바워]]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도 [[카테나치오]]를 개량해서 스위퍼를 [[리베로]] 개념으로 운용하기 시작했고, [[1970 FIFA 월드컵 멕시코|1970년 멕시코 월드컵]]에서 [[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|브라질]]은 오늘날도 역대 최강 팀이라는 칭호를 듣는 유기적인 미드필더진을 구축한 바 있다. 허나 그렇다고 해서 토탈 풋볼을 완성시키고 축구계 전반으로 유행시킨 [[리누스 미헬스]]나 요한 크루이프의 위대함이 빛 바래는 것은 아니다. 애초에 두 사제지간이 만들어낸 위대한 업적들이 없었다면 토탈 풋볼은 오늘날 축구에서 주류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. 결국 이 두 사람과 당시 [[AFC 아약스]], [[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]]으로부터 현대축구가 태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. 여담으로, 이렇게 네덜란드에서 대를 이어 토탈 풋볼의 싹이 키워지고 있던 반면, [[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|잉글랜드]]는 [[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|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]]에서 우승하고 [[킥 앤 러시]] 전술이 대세를 타게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